『각정동직업별호구조서』로 1934년 서울을 읽는다


(반려동물뉴스(CABN)) 서울역사박물관은 소장유물자료집8『각정동직업별호구조서各町洞職業別戶口調書』를 발간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이 소장한 다양한 인구 관련 자료 중 하나인 『각정동직업별호구조서』는 1934(소화9)년 말 현재 서울(경성)의 인구를 최하위 행정단위인 정町과 동洞을 기준으로 내지인(일본인), 조선인, 외국인의 민족별로 구분하고, 이를 다시 8개(농·임·목축업, 어업·제염업, 공업, 상업·교통업, 공무·자유업, 기타 유업자有業者, 무직자, 직업을 신고하지 않은 자) 직업별 범주로 분류한 통계자료이다.

호구는 호수와 인구를 지칭하는데, 호수는 다시 주거와 세대로 구분하였고, 인구는 남녀로 나누어 기록하였다.

당시 전국 조선인의 직업 분포는 농·임·목축업이 75.1%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반면 서울의 조선인은 상업·교통업이 31%로 가장 많고, 다음이 기타 유업자 22.8%, 공업과 공무·자유업이 각각 12.9%, 12.5%로를 차지했다. 일본인은 전국적으로 보면 공무·자유업, 상업·교통업에 각각 42.2%, 26.9% 종사하였는데, 서울의 일본인은 공무·자유업(39.4%)이 상대적으로 낮고 상업·교통업(34.6%) 비중이 높다. 외국인은 전국적으로 보면 상업(45.9%), 농업(21.8%), 공업(14.3%) 순이지만, 서울 외국인들의 직업은 상업(61%)이 압도적으로 높다.

'호구조서'에는 서울 사람들을 내지인(일본인), 조선인, 외국인으로 분류하였다. 1930년대 중엽까지 매년 전국 인구 중 내지인(일본인)의 비율은 2.7%, 외국인의 비율은 0.3% 이하였던 것에 비해 1934년 서울에는 일본인이 28%, 외국인이 1.5%를 차지했다.

1934년 서울에는 조선인, 내지인(일본인), 외국인(특히 중국인) 등 동아시아 3국의 사람들이 서울 사람으로 살았다. 침략자와 상인으로 서울에 와서 서울 사람이 된 이방인들과 조선인들은 어디에 살았을까. 1934년 서울은 을지로(황금정)을 기준으로 일명 북촌에는 조선인들이, 남촌에는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다. 1910년대 감소하던 중국인들은 1920년대 후반이 되면 남대문로 2·3가 서쪽으로 중국인 거리를 형성하였다. 서소문정(1164명), 태평통2정목(642명), 장곡천정(621명), 북미창정(201명)의 외국인들은 대다수가 중국인이었다.

관련 연구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지도와 그래프 등 다양한 시각적 자료들로 자료집을 꾸며 기획하였다.

송인호 서울역사박물관장은 “「각정동직업별호구조서」는 식민지 수도 경성부의 도시 성격과 구성원들의 모습을 읽어 내는 매우 중요한 자료로, 구체적인 통계자료의 과학적 분석을 통해 1934년 서울의 장소와 역사와 기억에 대한 학문과 이야기가 보다 깊어지고 풍성해지기를 기대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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